Monday, January 20, 2025

바울의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

 * 바울의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란 어떤 의미일까? 

- 고후 12: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σάρξ 사륵스, 손질해서 잘 쓰려는 몸,육신)에 가시(σκόλοψ G4647=4628 + 3700) 곧 사단의(Σατανᾶς 사타나스) 사자(ἄγγελος 앵겔로스)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콜라피조 G2852, 나카 נָכָה H5221)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 '가시,스콜롭스(σκόλοψ)'의 의미는 '말뚝,막대기,가시(G4647)'인데, 이단어는 G4628과 G3700의 합성이다.

먼저 G4628은 '다리(G4628 σκέλος)'를 의미하는데, 이 단어는 '여위다'의 뜻에서 유래하였다. 또한, 이 '다리(G4628 σκέλος)'라는 단어는 신약에서 오직 요19:31,32,33에서만 쓰였다.

아시다시피 이 구절은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예수님의 다리만 꺽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는 구절들이다. 이 구절들이 의미하는 것은 '이미 죽어서, 다시 살아나 도망갈 수 없으니 다리를 꺽을 필요가 없다'의 뜻을 담고 있다. 

나머지 한 단어 '옾타노마이G3700(ὀπτάνομαι)'는 '나타나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보여지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호라오(G3708 ὁράω)와 같은 단어로 볼 수 있다(마5:8, 눅13:28 행7:30 고전15:5 막9:4, 눅1:11, 행9:17.등에 쓰임). 그 속의 의미는, 그리스도를 깨달아 알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가시,스콜롭스(σκόλοψ)는 히브리어로 'קוֹץ H6975'인데 'H6972 추수기를 보내다, H7019 ‘잘라내다’에서 유래하였다. 이를 묵상해 보면 '추수기가 지나서 혼적 열매는 모두 떨어지고 잘라낼 가시들만 남은 상태'를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곧 사단의 사자'는 원어로 '사타나스 엥겔로스'인데, 사단은(Σατανᾶς 사타나스,G4567) 대적자를 의미한다.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과 대적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고, 사자(ἄγγελος G32)는 '소식을 전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사단의 사자는 '하나님의 뜻에 반(反)하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 그리고 고후12:7절에 나오는 '(나를) 쳐서'는 헬라어로 '콜라피조' G2852, 히브리어로는 나카(נָכָה H5221)이다.

'콜라피조'는 마26:67, 막14:65에서는 '(예수를)주먹으로 치다'로 사용하였으며, 고전4:11과 벧전2:20에서는 '매 맞다'로 사용되었다. 또한, 이 단어 '치다'의 히브리어 나카(נָכָה H5221)는 '세게 때리다,(므비보셋)절름발이의, (모세가 반석을)치다'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단어는 '씨가 열려서(터져서) (영의)숨을 쉬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종합하여 보면 육체의 가시란, 바울이 많은 하나님의 계시를 알게 됨으로 스스로 높아져서 이전(사울)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됨으로 천하를 호령하며 대단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자신은 이미 혼으로 돌아갈 수 없는 죽은 상태임을 깨닫게 된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는 바울의 의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육적 다리가 죽어서 다시 혼으로 돌아가지질 않는다는 것의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돌아간들 그렇게 돌아가서 전하게 되는 것은 예수를 대적하는 말씀들 뿐이라는 의미가 '사단의 사자'이다.


 이러한 내용을 뒷바침 할 수 있는 것은 이 문장의 앞과 뒤의 내용들이다.

고후 12장 앞부분은 그가 부득불 자랑하는 삼층천 이야기와 하나님이 열어 주신 비밀의 내용들로 인해 자신이 자고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또한, 뒷 문장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하는 말도 한다. 이 말 속에는 자신이 다른 큰 사도들 보다 구약에 대한 지식면에서는 전혀 부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 우리가 바울 서신들을 통해 보아도 바울의 구약에 대한 탁월함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한 그가 다시 육적 행함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메세지를 전하지 못하게 마치 주님의 다리가 십자가에 못 박히듯 못을 박아 놓으신 것이 곧 바울의 육체의 가시이다.    

Saturday, January 11, 2025

히브리서 10장 5절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한 몸'은 누구를 의미하는 걸까?!

 -히10:5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δέ 그러나)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위 문장에서 나오는 '한 몸'은 누구를 의미하는 걸까?

이 '한 몸'에 대한 의미를 AI에게 질문하거나 많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찾아보면, 대부분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하나님에게 받쳐지신 '예수의 몸'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정말 '한 몸'이 '예수님의 몸'을 의미한다면,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든다. 

이 5절 이후의 구절들은(히10:6~10:10절) 구약의 시편에서 인용된 구절들이다. 때문에 시편 40:6~10절 사이에도 분명 히브리서 10장5절에 나오는 '한 몸'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럴까?! 또한, 그게 맞다면, 구약에서도 '예수님'이 나타나셔야 되지 않을까?!

-시40:6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כָּרָה파다,뚫다 H3738)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40: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בָ֑אתִי 들어오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40: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תּוֹרָה 토라)이 나의 심중(מֵעֶה메에)(תָּוֶךְ타베크)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시편 40:6~8절을 원어를 통하여 의역을 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시40:6 주께서 나의 귀를 뚫고 여시어,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40:7 이는 두루마리 책 안에 쓰여진 글이요,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이'가 내 안으로 들어오신 것임을( בָ֑אתִי ) 말하여 주셨나이다. 40:8 하나님이여 주의 뜻을 분석하여 깨닫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새겨져)있나이다. "

또한, 이를 설명한 히브리서 10:6~9절을 짧게 의역하면,

"우리가 행하여 온 번제함과 속죄제는 모두 율법에 따라 드린 것이라. 그 후에(다른이가 אַחֲרֵי,즉 그리스도)말씀하시기를 말씀을 깨닫는 것이 첫 것을 폐하고 둘째 것을 세우는 것이니라."로 볼수 있다. 

-히10:6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10: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10:8 위에 말씀하시기를 제사와 예물과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원치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10: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렸다고 나오는데, 이 문장을 원어로 직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이 뜻 안에서 우리의 영의 몸, 예수, 그리스도가 모두 연합을 통하여 하나가 되어 하나님에게 데리고 나아가므로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히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ἐφάπαξ G2178=G1909와 G530 모두 연합하여) 드리심으로(προσφορά G4376(하나님)에게 데려가다)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ἐν ᾧ θελήματι ἡγιασμένοι ἐσμὲν διὰ τῆς προσφορᾶς τοῦ σώματο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ἐφάπαξ.)

그러면, 다시돌아가서, '한 몸'은 시편에서 어떤 것으로 표현 되었을까? 

앞의 설명에서 대충은 알수 있듯이 '한 몸'은 '우리의 영'의 몸을 말한다.

시편 40:8에서 이를 '나의 심중'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히브리어로는 '베 타베크 메에(בְּתֹ֣וךְ מֵעָֽי)(배(가슴) 중앙안에)이다. 

여기서 배(가슴)을 나타내는 '메에(מֵעָֽי H4578)'는 구약 여러 곳에서 '몸'으로도 번역되었다(창15:4, 삼하7:12, 아5:14). 

또한, '중앙안에'를 나타내는 타베크(תֹ֣וךְ H8432)는 ‘절단하다’는 뜻의 어원에서 유래하였는데, 그 뜻을 묵상해보면, 우리의 혼적 인생은(ךְ,카프) 그 중앙을 절단하여 보아도 영이 존재하지 않는다(תֹ֣타브)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우리의 몸 중앙에 '주의 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즉, 말씀이 우리안에 새겨지고 그로인해 자기부인이(תֹ֣타브) 된 영의 몸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다음 구절인 9절부터는 그 새겨진 의의 기쁜 소식의 말씀을 숨기지 않고 전한다고 한다. 

-시40:9 내가 대회 중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40:10 내가 주의 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내가 주의 인자와 진리를 대회 중에서 은휘치 아니하였나이다

내 생각은 이 문장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표현하였다고 본다.

-마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10: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마10: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맨 위의 첫문장을 다시 살펴보고 마무리하고자 한다. 

히10:5의 '세상에 임하실때에'의 헬라어 '이세호마이(εἰσέρχομαι G1525)'인데, 이는 G1519와 G2046가 합쳐진 단어이다. 그 어원을 따라가면, '~을 향해 완전하게 말하다'의(ἐρέω, ῥέω G4483) 의미가 나타난다. 

또한, '예비하셨다'는 헬라어 카타르티조(καταρτίζω)인데, 이 단어는'(원래의)원상으로 복구시키다'이며, 히브리어로 보면, 쿤(כּוּן)으로 '똑바로 서다'이다. 이 단어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달리다 쿰'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ἐγώ)'는 여격으로 '나에게'로 표현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래서 히10:5절을 의역하여보면 다음과 같다.

 -히10:5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하(9절))므로 세상을 향해 완전하게(이세호마이 εἰσέρχομαι G1525)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신다고 말하셨다. 그러나, 나에게 다시 원래의 상태로 똑바로 설 수 있도록 영의 몸을 준비하셨다.

Monday, January 6, 2025

보혜사 성령의 의미,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 G3875), 므나헴(מְנַחֵם H4505)

 

보혜사 성령의 의미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보혜사 성령의 의미는(요 14:26, 요 15:26, 요 16:13) 하나님의 참 말씀을 뜻한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위 구절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혜사 성령님은 계속 우리를 가르치시고, 증거하시고, 말하시고 알리신다. 즉, 말씀이시다.
 
 


보혜사 성령; 파라클레토스, 므나헴

보혜사 성령중재자, 조정자, 돕는 자, 변호자, 위로자, 중보자를 의미하는데, 보혜사의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 G3875)라고 하며, 히브리어로는 므나헴(מְנַחֵם H4505)이라고 한다.

파라클레토스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 G3875)를 좀 더 살펴보면, 이는 G3870에서 유래하였는데, G3870(παρακαλέω)은 '~곁에서 부르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G3844와 G2564에서 유래하였다. G3844(παρά)는 '~에게서 부터, 곁에, 가까이, 함께'라는 의미가 있고, G2564(καλέω)는 '부르다,호출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즉,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 G3875)는 '혼의 영역으로부터 하나님의 곁으로 (말씀으로) 부르다'의 의미임을 알 수 있다. 

므나헴

또한, 보혜사의 히브리어 므나헴 (מְנַחֵם H4505)은 안위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 어원은 나함(נָחַם H5162)으로 나함의 의미는 '슬퍼하다,불쌍히 여기다,위로받다, 보복당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나함이 처음 쓰인 구절이 창5:29인데, 이 구절은 나함과 므나헴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창5:29 이름을 노아(נֹחַ H5146)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נָחַם H5162)하리라 하였더라

여기에서 노아의 이름의 의미는 '안식, 휴식'이다. 노아(נֹחַ H5146)의 이름을 묵상해보면, 그 분석된 의미는 '((혼의)말씀의)씨가 하나님의 생명안으로 들어가다'이다. 그러기에 안식이며, 휴식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 구절의 안위,나함(נָחַם H5162)의 뜻은 ' 슬퍼하다, 불쌍히 여기다, 위로받다'의 의미이다. 이 두단어를 통해 창5:29절을 의역하면,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함으로 인해 노아가 슬프나,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으로 위로를 받아, 영의 생명안으로 들어가 안식하였다는 의미이된다.

그러므로 보혜사의 히브리어 므나헴 (מְנַחֵם H4505)의 의미는 '(우리가 가진 혼의)말씀의 씨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되다'의 의미이다.

보혜사의 헬라어, 파라클레토스와 히브리어, 므나헴를 통해 우리는 보혜사 성령은 '우리가 알고 있던 혼의 말씀을 다시 깨닫게 하여 하나님을 옳바로 알게하시는 말씀성령'이심을 알 수가 있다.

사랑의 의미, 아가페(ἀγάπη G26), 아가파오(ἀγαπάω G25), 아하브(אָהַב H157), 아하바(אַהֲבָה H160)

 

사랑의 의미

성경의 사랑의 의미, 아가페(ἀγάπη G26), 아가파오(ἀγαπάω G25), 아하브(אָהַב H157), 아하바(אַהֲבָה H160)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한1서 4장 7~8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고 말씀하신다.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 사랑의 근본임을 알수가 있다. 또한, 4:8절을 보면, 하나님을 아는 것은 곧 하나님과 한 집에서 호흡하는 것임을 알수가 있다.(*참조)

-요일 4:8 사랑(אוֹהֵב, 하나님과 호흡하는 집에 (함께)묶이다)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אַהֲבָ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집에서 호흡하심)이심이라(이시기 때문이다)  μὴ ἀγαπῶν οὐκ ἔγνω τὸν θεόνὅτι  θεὸς ἀγάπη ἐστίν.

*참조; 히브리어 '사랑'과 관련된 단어들이 여럿이 있는데  그 중에 H14의 아바흐אָבָה 를 보면, 호흡과 관련이 있다. *אָבָה H14 호흡을 맞추다,마음이 쏠리다,동의하다

 하나님(א)과 호흡하는(הֵ)(ב)에 함께 묶이는(וֹ) 것이 사랑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 집에서 호흡하심이 곧 사랑인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상계에서도, A와 B가 서로 사랑하게 되면, A와 B는 서로 결혼하여 함께 한 집에 들어가 한 집에서 호흡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것처럼 성경이 말하는 사랑도 같은 뜻인 것이다.
또한, 한집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기전에 A와 B는 많은 시간동안 서로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아가게 되는데, 우리도 많은 시간동안 성경을 공부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사랑, 이웃사랑

레위기19:18절에 이웃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레19:18 וְאָֽהַבְתָּ֥ לְרֵעֲךָ֖ כָּמֹ֑וךָ אֲנִ֖י יְהוָֽה׃
이를 히브리어 원어에 보면, '이웃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하는 말은 없고, 원어에 따라 해석해 보면, '나 여호와(가 한것) 같이, 친구를 향해 사랑하라.'의 내용이다.

또한 '같이( כָּמֹ֑וךָ )'라는 단어의 의미는 '자기 부인의 말씀과 씨를 묶은 것 같이'이며, 친구(רֵעֲךָ֖)는 '머리가 (영을)깨닫게 하는 씨'의 의미이다.

이 친구(רֵעֲךָ֖,레아 רֵעַ H7453)라는 단어는 라아( H7462 רָעָה)에서 왔는데, 라아( H7462 רָעָה)의 뜻은 '방목하다, 다스리다, 먹이를 주다'이며, ' 머리가 깨달아 숨쉬게 하다'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도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에너지를 갖게 되고 그것이 숨을 쉬는 동력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이 '이웃'의 원래 의미는 '혼의 머리가 영을 깨닫게 하는 씨'이고,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웃사랑'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랑하는 것, 함께 영의 숨을 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 역시 하나님과 함께 호흡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뜻, 기름 부음받은 자의 뜻, 거룩한 관유 그리고 비만

 

그리스도의 뜻, 기름 부음받은 자의 뜻

그리스도의 뜻, 기름 부음받은 자의 뜻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추가로 '거룩한 관유'와 '비만'의 영적 의미 또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스도는 헬라어로 크리스토스이다. (Χριστός G5547 그리스도, 기름 부음 받은 자 [ Christŏs ]) 또한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 메시야( מָשִׁיחַ H4899 기름부음을 받은)이다.

기름부음에 대한 설명이 처음 나오는 성경구절은 출애굽기 30:25절이다.

-출30:25 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기름을 만들지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지라(  שֶׁ֥מֶן מִשְׁחַת־קֹ֖דֶשׁ )

여기서 거룩한 관유가 나오는데, 이것이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첫 설명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이 단어들을 잘 살펴보면 세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위의 그림처럼 다음과 같은 세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קֹ֔דֶשׁ ; 분리됨, H6944, 코데쉬, 거룩함, 지성소

מִשְׁחַת ; 기름 부음, H4888, 기름을 바름, 메쉬하아

שֶׁ֚מֶן ; 기름짐, H8081 비만, 향기로운 기름, 쉐멘

 

קֹ֔דֶשׁ ; 코데쉬, 분리됨, 거룩함,지성소

코데쉬는 많이들 아시듯이 거룩함을(קֹ֔דֶשׁ) 뜻하는 단어이다. 또한, 분리됨을 의미한다. 여기서의 분리됨은 혼적 영역으로부터 분리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좀 더 묵상해보면, 영적의미는 '목이 곧은 자아(קֹ֔)를 분쇄하여(שׁ) 영의 문(דֶ)으로 옮기다'의 의미가 있다.

 

מִשְׁחָה ; 메쉬하아, 기름 부음

메시야를 의미하는 메쉬하아(מִשְׁחַת)는 원형이 마샼(מָשַׁח H4886)인데 그 뜻은 ~을 덮다, 기름을 붓다, 주름을 펴다, 문지르다, 기름을 바르다이다. 그리고 그 영적의미는 '말씀(מִ)을 분쇄하여(שְׁ) 영원한 생명(חַ)을 주는 마지막 언약을 이루다(מִשְׁחַת)'인데, 묵상해보면 '말씀을 짜서(분쇄해서) 기름을 얻고 그것을 발라서 막을 형성함으로서 혼의 영역과 영의 영역을 분리를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도 우리는 씨를 짜서 기름을 얻는다.  

 

שֶׁ֚מֶן ; 쉐멘, 기름짐, 비만, 향기로운 기름 

쉐멘은(שֶׁמֶן H8081)은 기름짐, 비만, 향기로운 기름의 의미인데, 보통의 기름들이 씨를 짜서 기름을 얻듯이 '말씀(מֶ)의 씨(ן)를 분쇄하여(שֶׁ) 향기로운 기름을 얻다'의 영적의미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기억 할 것이다, 어릴 적 시장 골목에 가득 찼던 고소한 기름 냄새, 그 냄새를 말하는 것이 이 '쉐멘' 일 것이다. 

또한, 지방,우유, 젖의 뜻을 가지고 있는 할레브(חֵלֶב H2459)는 쉐멘과 비슷하게 비만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가장 좋은 것이라는 의미가 포함된 것은 할레브는 '무감각한 자, 둔감한 자, 느린 사람, 활기없는 사람'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혼적 자아가 영을 인식하고 혼에 대하여 '무감각하고, 둔감하고, 활기없는' 상태가 되어 가는 것이기에 가장 좋은 것이라는 의미가 함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뜻

이상을 세개의 단어를 함께 묵상하면, 그리스도의 뜻우리의 혼적 말씀의 씨를 분쇄하여 받은 기름을 부음 받은 자, 그의 말씀이 우리 자아를 분쇄하여 영의 생명을 숨쉬게하고 혼의 영역에서 분리시키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인자(1) 인자의 뜻, 사람의 아들의 뜻 (The Son of man, 벤아담 בֵּן־אָדָם ,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ο υιος του ανθρωπου)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인자(人子)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신다. 과연 이 인자의 뜻 / 사람의 아들의 뜻이 무엇이기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많이 사용하신 걸까? 이 인자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서부터 신약성경까지 대단히 많이 사용되었는데, 우리는 그 뜻을 자세히 모른다. 중요한 단어이기에 예수께서는 그렇게 많이 사용하셨을텐데 말이다. 이 시간은 이 인자의 뜻을 원어를 통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인자의 뜻-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마태복음 16장13절~19절에는 예수께서 스스로 인자에 대한 질문을 하시고 이에 대해서 대화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마 16:13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6:14 가로되 더러는 침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6:15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 מָשִׁיחַ H4899)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υἱός G5207 아들,벤 בֵּן H1121->בָּנָה H1129 유래, 누구를 위해 집을 짓다,~누구에게 자손을 주다)이시니이다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ἀποκαλύπτω G601 드러내다,폭로하다,아포칼립스)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남성단수,
כִּיס H3599 자기부인의 말씀뼈대(가슴뼈),(진리의 고백을 담는)주머니, 저울추,전대, 즉, 참된 저울추를 넣는 주머니, 신25:13, 잠1:14,미6:11)라 내가 이 반석((자기부인의 고백)πέτρα G4073 바위,צוּר H6697 돌,바위,이스라엘의 피난처,피할 바위 신32:37, 시18:2)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בָּנָה H1129, 누구를 위해 집을 짓다,~누구에게 자손을 주다), 음부의 권세((영을 가두어둔)대문 πύλη G4439,שַׁעַר H8179 분쇄되어야 깨닫는 머리)가 이기지 못하리라 (의역; 베드로는 참된 저울추(참 성도)를 넣는 주머니라, 이 고백(이스라엘의 피난처) 위에 (아들을 주어) 교회를 지으리라. 영을 가두어 두는 하데스의 대문이 그를 이기지 못하리라.)
-16:19 내가 천국 열쇠(מַפְתֵּחַ H4668 여는 것,푸는 것,쪼개다,말씀의 열매인 십자가로 생명에 들어가다)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λύω G3089 풀다,열다, נָתַר H5425 (잎이) 떨어질까 동요되다,포로를 풀어주다) 하시고(의역; 천국 열쇠, 즉 하나님의 아들로 땅에서 하나님과 묶이면 하늘에서도 묶이고, 땅에서 (죄에서 부터) 옮겨지면(해방되면) 하늘에서도 해방되리라)

인자의 뜻은 위에서 보듯이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의 의미는 또 무엇일까?

그리스도의 뜻

예수님께서 인자는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기부인의 고백을 하는 베드로에게 잘하였다고 칭찬하시면서, 그러므로 음부의 대문(πύλη G4439, שַׁעַר H8179), 즉 분쇄되어서 깨달아야 열리는 문을 열어줄 천국열쇠(מַפְתֵּחַ H4668), 즉 하나님의 아들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서 처럼 인자의 의미는 우리가 기존에 쌓아놓은 나의 머리됨이 분쇄되고 영이 깨달아져야 하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알수있다.

베드로의 고백에서 기인하여 먼저 그리스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나, 그리스도의 뜻에 대하여는 다른 글에서 이미 설명한 바가 있기에 좀 더 깊은 내용은 그 글을 참조하는 것이 보다 나을듯하다, 여기서는 간략하게 그리스도의 뜻을 설명해 보면, 그리스도의 뜻은 '하나님 말씀의 씨를 분쇄한 기름을 부음 받은자, 그래서 혼으로 존재하지만 영으로 분리가 되어 있는 자'이다.

그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면 우리 또한 혼을 살아가지만, 그 분쇄된 말씀이 우리안에서 깨달아지는 순간, 순간들은 영을 낳는 것이고, 그것이 곧 카이로스의 시간들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은 베드로의 주머니(כִּיס H3599)에 담겨 하나님 영역에 만들어 주시는 영적 교회로서 하나님과 함께 카이로스를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뜻

베드로는 또한, 인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대답하였는데, 아들이라함은 아버지의 피가 그 아들안에 흐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인자에게는 하나님의 피가 흐른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고 성경에서는 피를 성령이라하였으며(요일5:6),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보혜사 성령은(요 14:26, 요 15:26, 요 16:13) 말씀을 의미한다. 보혜사 성령은 중재자, 조정자, 돕는 자, 변호자, 위로자, 중보자를 의미하는데,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 G3875), 히브리어로는 므나헴 (מְנַחֵם H4505)이다.
간략히 말하면, 보혜사 성령의 의미는 ‘(우리가 받은)말씀의 씨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되다’의 의미이며, 의역하면 ‘우리가 알고 있던 말씀을 다시 깨닫게 하여 하나님을 옳바로 알게하시는 말씀성령’이시다.

또한, 요한일서 5:6절에서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하였기에 물과 피와 성령은 다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곧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자는 곧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영의 말씀을 말하는 것이다.

한편, 인자의 히브리어는 벤 아담(בֵּן־אָדָם)이다. 여기서 벤(בֵּן H1121)은 아들을 의미하며, 아담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첫 사람 아담이다. 이 아담이라는 단어는 אָ + דָם 이다. 담(דָם )은 피를 의미하고(דָּם H1818 피, 포도즙), 알레프( אָ)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즉 아담은 '하나님의 피가 흐르는 존재'라는 뜻이다. 또한, 물은 말씀을 의미하기도 하므로 아담은 '하나님의(אָ) 영의(דָ) 말씀(ם,멤)'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아들을 뜻하는 히브리어 벤( בֵּן H1121)은 바나(בָּנָה H1129)에서 유래하였다. 바나의 뜻은 '~누구를 위해 집을 짓다,~누구에게 자손을 주다'이다. 

이를 바탕으로 벤 아담(בֵּן־אָדָם)을 묵상해 보면, 하나님의 영의 말씀을 가진 하나님의 집(בֵּ)을 짓기 위한 말씀의 씨(ן)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벤 아담이 100회 이상 쓰인 구약에서는 벤아담이 자칭(自稱)으로 쓰인 경우는 없다. 오직 신약에서만 인자(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ο υιος του ανθρωπου)가 자칭(自稱)으로 많이 쓰였는데, 복음서에서 81회가 자칭으로 쓰였으며, 나머지 4회는 복음서외(사도행전 1회, 히브리서 1회, 요한계시록 2회)에서 성경기자에 의해 3인칭으로 묘사 되었다. 결론적으로 벤 아담을 자칭으로 사용하시는 예수님은 그 씨가 되는 것이고, 벤 아담을 3인칭으로 묘사하였던 구약의 사람들은 그 씨를 받은 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인자를 자신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심으로 인해 '인자'라는 단어가 마치 역사적 예수의 고유 명사가 되어 버린 것 같은 인상을 우리는 받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인자라는 단어를 접할때는 제 3자처럼 인자를 인식하곤 한다. 하지만 그 인자를 제 3자처럼 인식하면 않되며, 그 인자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우리에게 임하시는 성령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 또한 기름 부음은 성령이 임하심을 의미한다.(*참조 삼상16:13, 사 61:1, 눅4:18, 행 10:38)

-삼상16: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사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4: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인자, 곧 그리스도가 기름 부음으로 성령이 임하신 자(고후 3:17)인것 처럼, 우리도 우리와 같은 사람인 다윗처럼 기름 부음으로 성령(רוּחַ H7307,Πνεύματος G4151)이 임하여야 한다(이사야 44:3,요엘 2:28,요7:39,요14:26,요20:22,롬8:9,빌1:29,갈4:9,고후 3:17). 그럼, 기름 부음이란 무엇인가?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분쇄한 기름을 부음 받은자' 즉, 우리가 알고있는 표면적인 성경 말씀이 분쇄되고 분석되어 이면적인 참뜻을 깨닫게 되는 것이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이다. 성령이 임하시는 것이다(막 6:13약 5:14). 하지만, 그 하나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끄심에 기인한다. 그 과정은 다니엘서에 잘 나와있다.

인자의 뜻 - 사람이 낳은 영원한 생명이며, 사람이 깨달아 가는 영원한 진리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인자, 벤 아담(בֵּן־אָדָם)은, 하나님의 영의 말씀을 가진 하나님의 집(בֵּ)을 짓기 위한 말씀의 씨(ן)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하나님의 영의 말씀의 씨를 받은 자는 성령이 임한 자이며, 인자인 것이다. 

 

사순절, 부활절은 성경에 없다.(숫자 4의 의미, 숫자 40의 의미) 부활의 의미(3)

 

사순절, 부활절은 성경에 없다

성경에는 단 한번도 사순절과 부활절에 대한 언급이 없다. 사순절, 부활절은 성경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왜, 해마다 사순절, 부활절을 지내는가!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골고다 언덕에서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8)"고 하셨다.
 
사순절, 부활절은 성경에 없다
 

사순절, 부활절의 기원과 관련 성경 구절

사순절은 성경에서 기인한 절기가 아니다. 오히려 고대에 이방인들이 우상, 이슈타르를 섬기던 풍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창세기 10:8절에 나오는 독재자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는 남편이 죽은 후 여왕이 되었고 2년 뒤, 담무스를 낳았는데 훗날 자기가 낳은 아들, 담무스가 장성하자 그와 결혼을 한다. 이는 이 아들이 남편인 니므롯의 환생이라고 포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무스가 40세 되는 날, 사냥을 갔다가 멧돼지에게 받혀 죽임을 당하자 그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세미라미스는 담무스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도했는데, 40세에 죽은 것에 한해를 하루로 하여 40일간 울며 금식하게 만들고 이를 모든 백성이 해마다 지키게 하였다. 그것이 이방풍습으로 전해오게 되었고, 이스라엘로 넘어왔는데, 그 모습을 에스겔 8장 14절에서 볼 수가 있다.
 
-겔 8:14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는 북문에 이르시기로 보니 거기 여인들이 앉아 담무스를 위하여 애곡하더라
 
그 세미라미스의 다른 이름이 성경에서는 아스다롯이며, 페니키아인들의 아스타르테, 그리스의 아프로디테, 로마의 비너스, 바벨론의 이쉬타르이다.
아가페 성경사전에 따르면 “여신 아스다롯은 바벨론식 표현인 ‘이쉬타르’로 공공연하게 숭배되었다.”고 밝혔다. 바로 이쉬타르가 오늘날 이스터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 니므롯과 아스다롯은 성경 여러곳에 나오며, 그들을 섬김으로서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다.
 
*참조 ; 니므롯 -창10: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참조 ; 아스다롯
-삿 2:13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니므롯)과 아스다롯(세미라미스)을 섬겼으므로
2:1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들로 노략을 당케 하시며 또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치 못하였으며
2:15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왕상 11:33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경배하며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내 법도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함이니라
왕하 23:13또 예루살렘 앞 멸망의 산 오른쪽에 세운 산당들을 왕이 더럽게 하였으니 이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것이며
사무엘상 7:4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사무엘상 12:10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범죄하였나이다 그러하오나 이제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하매
 

숫자 4의 의미, 숫자 40의 의미

여기서 잠시 위에 언급한 '40일간 울며 금식하게 만들고 이를 모든 백성이 해마다 지키게 하였다'와 사순절(四旬節, 영어: Lent)에 포함된 40은 과연 성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잠시 살펴보겠다.
먼저, 숫자 4를 헬라어와 히브리어로 보면,
히브리어에서 4는, 넷째이라는 레비이(רביעי H7243) / 넷, 네 배, 나흘, 사방이라는 뜻의 아르바(ארבע H702)가 있으며, 복수형의 아르바임(אַרְבָּעִים H705 사십, 마흔)이 있다.
헬라어에서 4는, 넷을 의미하는 텟사렛트(τέσσαρες G5064)와 넷째를 의미하는 (τέταρτος G5064)과, 마흔,사십을 의미하는 (τεσσαράκοντα G5062)가 있다.
그리고 게마트리아 4이며 히브리어의 알파벳의 네번째인 '달렛'(ד(달렛) = 4)이 있는 이 알파벳이 뜻하는 것은 '문 door'인데, '나는 양의 문이라(요10:7)'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있는 철자이며, '문을 열고 영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모두를 종합해보면 숫자 4의 의미하늘의 것이 땅에서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숫자 4의 복수형인 숫자 40의 의미는 우리의 이 세상을 의미하는데, 이 기간동안 하늘의 뜻을 알아내야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자아의 부인이 뒤따른 것이기 때문에 고난이 함께한다. 근데, 이 고난은 하나님 입장에서는 우리에게 주시는 복(바라크)인 것이다.
 

어쩔수 없이 행해지는 사순절이라면

다시 니므롯과 아스다롯으로 돌아와서 이 니므롯과 아스다롯이 로마 카돌릭을 거쳐 사순절이라는 전통을 만들고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인데,

종교개혁 때 칼빈은 이 사순절에 대하여 "사순절은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끌어내리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기독교 강요,4권 17: 31"라고 말하였다. 그렇게 해서 개혁한 교회가 다시 사순절을 지킨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로 영 단번에 구속함을 이루셨다(히9:12).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무시하고 해마다 사순절을 지낸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희생제물로 구약의 제사를 다시 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사순절, 부활절은 성경에 없다! 하지만, 어쩔수 없이 행해지는 사순절이라면, 이 기간 동안, 이 부활절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씀 묵상밖에는 없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내가 부서져 가는 길 밖에는 없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 스스로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와 우리 자녀를 위하여 울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히브리어 에무나(אמונה)를 통해 보는 믿음의 영적인 의미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뜻은 과연 무엇일까? 그 믿음의 영적 의미를 히브리어 에무나(אמונה)을 통하여 그 뜻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스스로 질문한다. '나는 믿음이 있는가? 어느날은 있는 것 같고, 어느날은 전혀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믿음이 들쑥날쑥해도 되는 건가?'... 이렇게 늘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을 바로 잡아보기위해(?) 믿음의 영적 의미가 무엇인지, 믿음의 히브리어 '에무나(אמונה)'와 헬라어 '피스티스, 알레떼이아(ἀλήθεια)'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히브리어 에무나(אמונה)(믿음) 의 뜻

에무나(אמונה)는 '아만 אָמַן’ 동사의 명사형이며 이 아만은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다. 지속하다, 지탱하다. 팔로 지탱하다. 확고한, 성실한, 참으로, 진실로, 아멘, 믿다, 신뢰하다, 확실하다, 성실, 진리 등등. 에무나 또한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는데 확고함, 신뢰성, 정직, 영구적인 의무등등이다.

이 두 단어의 뜻들을 종합해 보면, 믿음은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고 거짓되지 않은 영원한 것,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에게 드는 생각은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믿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인가? 우리는 믿음을 가질 수 없는거 아냐?'이다.

맞다. 언제나 들쑥날쑥인 우리로서는 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을 가질 수는 없다. 누구나 알듯이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고 거짓되지 않은 영원하고 지속적인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인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속성이다.

에무나(אמונה) 단어 자체에도 우리는 스스로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임을 이미 나타내고 있다. 히브리어 에무나를 분석해보면, '하나님의 말씀(אמ)을 씨앗(נ)으로 심어(ו) (영의)호흡을 하게하다(ה) '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에무나 글자 안에는 히브리어의 여섯 번째 알파벳 바브(ו)가 들어가 있는데, 이 여섯 번째 알파벳 바브(ו)는 성막의 텐트를 세우기 위해서 땅에 줄을 고정해서 박아 놓는 '말목,말뚝'을 의미하며, (A와 B를)연결하다, 갈고리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참조; - 출 27:10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바브וָוֵ֧י)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찌며
וְעַמֻּדָ֣יו עֶשְׂרִ֔ים וְאַדְנֵיהֶ֥ם עֶשְׂרִ֖ים נְחֹ֑שֶׁת וָוֵ֧י הָעַמֻּדִ֛ים וַחֲשֻׁקֵיהֶ֖ם כָּֽסֶף׃

또한 바브의 게마트리아는 6 인데, 6의 의미는 창세기 1:29~31에 나오는 여섯째 날에서 유추 할 수 있다.
- 창1: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6의 의미는 땅에 씨를 뿌려서(זֹרֵ֣עַ זֶ֗רַע)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가 나온다의 의미이다.



이 내용들을 바탕으로 에무나(אמונה)의 영적 의미를 좀 더 풀어서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다.

' 우리가 표면적으로나마 하나님의 말씀(אמ)을 받아서 그 이면(裏面 물체의 뒤쪽에 있는 면;롬2:29)의 말씀을 깨달아 가는 씨앗(נ)을 내 마음 밭에 심어서(ו) 결국은 영을 알아가고 영의 호흡을 하게 되는 것(ה)'

이것이 에무나의 영적 의미이며, 믿음의 본질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올때에 이 땅에서 믿음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피스티스 πίστις)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늘 말씀을 다 안다고 생각하며, 경시하는 우리는 눈에 보이는 말씀의 이면(裏面 )에 있는 하나님의 영의 말씀을 우리 스스로 우리의 마음 밭에 심을 수 없을뿐더러, 위에 언급하였듯 믿음을 영원히 확고하게 진실성있게 지속적으로 지탱할 수는 더 더욱 없다. 그렇다면 믿음은 우리에게로 올 수 없는 것인가?

믿음은 어떻게 우리에게 오는가?

믿음이 어떻게 오는지 구약과 신약의 몇 구절을 통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아말렉과의 영적 전쟁이 나오는 출애굽기 17:11~12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 출 17:11~12 모세가 손(יָד 야드, 영의 문으로 이끌다, 나는 양의 문이라 (요 10:1-10) )을 들면(רוּם 룸,(나의)머리를 말씀에 묶다)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אֶבֶן 에벤)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에무나,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지속되더라 의미).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내리면 지는데, 그들이 돌(에벤)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두니 그들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여기에서 돌, 에벤(אֶבֶן)은 하나님(אֶ)의 아들(בֶן H1121)을 뜻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이 나의 머리됨에 들어오시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지속적인 믿음의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또 시편에는 이러한 말씀이 있다.

-  시 37:3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에무나 אמונה)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에무나는 하나님의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며, 그 하나님의 에무나로 우리의 영적 식물로 삼으라는 말씀이다.

호세아에서는 하나님께서 믿음안에서 우리에게 장가드신다고 말씀하신다.

- 호2:20 진실함(에무나 אֱמוּנָ֑ה)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위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들어온다. 우리가 스스로 마음을 굳건히하고 믿음을 세운다고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우리 안에 들어 오셔야 비로소 우리에게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가 실제로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을 히브리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 히11: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實狀 실제의 상태,상황)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눈에는 보이지 않는 믿음의 증거)니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보면 왜 바울이 로마서에서 하박국의 말씀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하였는지 이해가 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이)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참조: 합2:4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영과 진리로 예배(요4:24) 그리고 가인과 아벨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네가 먹는 날에는 영이 죽으리라

"창세기 2: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장16절과 17절은 많은 이들이 아는 구절이다. 하지만 이 두 구절은 우리가 좀더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 한글 성경 내용과 히브리 원문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글 성경의 '열매'라는 단어는 히브리 원문에는 없는 단어다. 아마도 의역으로 들어간 듯하다. 또한 '각종' 과 '임의로'라는 단어도 원문에는 없는 단어이다.
창세기 2장 16절과 17절을 원문에 맞게 직역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진리를 담은 한 나무(생명나무, 단수형)는 네가 반드시 먹어라(אָכֹ֥ל תֹּאכֵֽל 단어 반복 강조 용법), (그렇치않으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게 될 것인데,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מֹ֥ות תָּמֽוּת 단어 반복 강조 용법) 하시니라".
 
직역한 내용이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내용과 사뭇 다르다.
이 내용을 다시 요약해보면, '(생명)나무를 반드시 먹어라, 그렇치 않으면 선악의 나무를 먹게 될 것이고 (그러면)반드시 죽으리라'의 내용이다.
 
그러면 왜 '나무'를 반드시 먹으라고 하시는 걸까?
'나무'는 히브리어로 '에츠עֵץ'인데, 그 어원은 '아짜 עָצָה'이고, (단단한 뿌리가 나무를 지탱하는것 처럼) (진리를) 견고하게 하다, 단단하게 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나무를 먹는다는 것은 진리를 견고하게 하는 것이고 그 단단한 나무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나무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선악의 나무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죽는 것이다. 여기서 죽는다는 의미는 '영'의 죽음이다.
하나님께서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하셨지만,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 먹은 그날 죽지않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다가 900년 후에 '육'이 죽었다. 때문에 선악의 나무를 먹은 그 날에는 그들의 '영'이 죽은 것이다.
 

나무(עֵץ)와 실과(פְּרִי )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선악과' 또는 '선악의 열매'라는 단어는 실제로는 어느 구절에서 나오는 것일까?
우리가 보는 한글 성경 창세기 2, 3, 4장에서는, 열매(실과)라는 단어가 10번 나오지만, 히브리 원어로 보면, 창세기 2, 3, 4장에서 열매(페리,פְּרִי )라는 단어는 단 4번만 나온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창세기2, 3, 4장에서 열매라는 단어를 말씀하시지 않았다. 아담도 열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뱀 조차 열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와만이 이 열매(페리,פְּרִי )라는 단어를 3번이나 사용하였다.
 
"창 3: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עֵץ)의 실과(פְּרִי )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창 3: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פְּרִי )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פְּרִי )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즉, 하와는 먹으라고 하신 '나무'가 아닌, 땅을 통하여 열매 맺은 선악의 지식 나무 열매(פְּרִי )를 먹고 선악의 지식을 견고히 하고, 단단히하여 그것과 하나가 된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그 하와가 지금의 우리이다.
마지막으로 이 열매(페리,פְּרִי )라는 단어가 한번 더 나오는 구절은 창 4장3절이다.
 

가인과 아벨 그리고 땅의 소산과 자기 부인

"창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페리,פְּרִי )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이미 선악과를 먹고 땅의 존재가 되어 살아가는 가인과 아벨은 각각 가인은 땅의 열매를, 아벨은 머리 둘곳 없이 떠돌다 처음 난(장자) 작은 가축의 기름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나아왔다.
가인(קַיִן H7013 참조)은 땅에 고착화된 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아벨(הֶבֶל)은 자신이 헛된 자임(전1:2)을 깨달은자, 자신이 안개임(잠21:6)을 깨달은 자, 자신이 영의 호흡이 아닌 입으로 호흡하는 자, 즉 혼의 존재임을 깨달은 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땅을 섬기며(עָבַד), 땅에 고착화 되어 땅에서 나온 열매를 제물로 가지고 나오는 가인을 하나님께서는 열납하지 아니하신 후에, 창4:7에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하신다. 여기에서 '다스리다'의 히브리어 마샬(מָשַׁל)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교 분석하고, 잘 살피어 판단하라'의 의미이다. 종합해 보면, 혼의 존재인 우리는 하나님에게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영이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오직 육의 입으로 호흡하는 헛된 자이며, 곧 사라질 안개임'을 고백하는 것 뿐이다. 그렇게 고백하고 죽는 혼들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영으로 살아나는 것이다(롬 6:3-8).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4:24 하나님은 영(프뉴마 πνεῦμα)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프뉴마 πνεῦμα)과 진정(진리,알레떼이아 ἀλήθεια)으로(데이 δεῖ) 예배할지니라.이를 직역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리고 영안에서 예배를 하라 그리고 반드시(δεῖ) 진리로 예배해야한다."의 의미가 된다.
 
이 문장의 중요 단어들의 뜻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예배를 뜻하는 헬라어 프로스퀴네오(προσκυνέω)는 프로스πρός(~이전에) + 퀴온κύων(개,dog)의 합성어이다.
곧 내 자신이 이전에 개였음을 인정하고 무릎꿇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아벨의 고백을 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누가복음 18:13을 보면 이러한 고백을 예수님은 좋게 보신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눅18:13 (로마의 앞잡이이며, 개로 여겨졌던 세리는) '성전에 나와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다' 그러한 그를 예수님은 '의롭다'고 하셨다.
 
-또한, 진리,알레떼이아는(ἀληθής) 1[부정불변사]+ G2990(λανθάνω)인데 그 뜻은 '가려져 있던 것이 드러나다'의 의미이다. 쉽게 표현하면 우리에게 가려져있던 영이 드러나다의 의미이다.
 
-마지막으로 데이(δεῖ)는 비인칭 동사로서 ‘반드시 ∼해야 한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로서는 애석한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엔 우리가 주일마다 진정성있게 열의와 정성을 다하며 예배를 드린다하여도 그것은 가인이 드렸던 땅의 열매, 땅의 소산일 뿐이다.
그러나, 혼의 상태인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참 말씀을 깨닫고 아벨의 고백을 하면, 그것이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영의 상태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아나스타시스, ἀνάστασις,(나무처럼)바로일어서다,누운 자를 일으키다)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참예배가 되는 것이다. 아멘.
영과 진리로 예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것이 곧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하나님의 소금언약(멜라흐 베리트 מֶלַח בְּרִית)의 뜻(말씀을 받은 자가 소금이다)

 

왜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쳐야하나?

레위기 2:13에 보면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는 말씀이 나온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소금언약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출애굽기 30:35에는 그것에 소금을 치면 그것이 성결해진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은 성경에서 말하는 소금의 참뜻이 무엇이기에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물이 성결해지는 것일까하는 것이다.
 
  • 나트륨은 혈압을 조절하는 데 관여합니다. 혈액 속 나트륨 농도가 높아지면 수분이 혈관 내로 끌려와 혈압이 올라가고, 이는 혈액 순환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 예를 들어, 동물들이 소금을 섭취하면 혈압이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어 산소와 영양소가 전신에 잘 전달됩니다.
  •  

    혼과 영의 분리 그리고 하나님의 소금언약

    레위기 2: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בְּרִית 베리트)의 소금(מֶלַח 멜라흐)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출애굽기 30:35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קֹדֶשׁ코데쉬)하게 하고(출 30:35)
     
    먼저, 성결(קֹדֶשׁ코데쉬)은 '잘라냄, 분리함'을 의미하는 말로 '더러움과 분리된 상태', 이는 하나님께만 있는 성품으로 모든 피조물과 완전히 다르게 구별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쉽게 표현해보면, 혼의 상태에서 영을 분리해 내는 것을 성결,분리함이라고 할 수 있다.
     
    -예배: 헬라어 프로스퀴네오(προσκυνέω) 프로스πρός(~이전에) + 퀴온κύων(개,dog)의 합성어
    곧 내 자신이 이전에 개였음을 인정하고 무릎꿇는 상태. 아벨의 고백의 상태
    -진리: 알레떼이아는(ἀληθής) 1[부정불변사]+ G2990(λανθάνω)인데 그 뜻은 '가려져 있던 것이 드러나다'의 의미,
    즉 우리에게 가려져있던 영이 드러나다의 의미
    -데이(δεῖ)는 비인칭 동사로서 ‘반드시 ∼해야 한다’의 의미
     
    여기서 우리는, '아, 소금을 치면 혼에서 영이 분리되는 것이구나'를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בְּרִית 베리트)이라는 것도 알수가 있다.
    *

      

     
     

    소금(멜라흐מֶלַח )의 참뜻

    성경이 말하는 소금의 참뜻은 무엇일까?
    먼저, 배추에 소금을 치면 왜 배추가 절여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는 이유는 삼투현상때문인데, 삼투현상이란 농도가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물이 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배추 안에 있는 용매인 물이 세포막을 통과해서 밖으로 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이 소금의 삼투현상을 기억하고 성경의 소금을 묵상하면, 그 의미를 알아가기가 좀 더 수월해진다.

    소금을 뜻하는 히브리어 멜라흐(מֶלַח )는, (하나님의 참)말씀(מֶ 멤,물)을 더 잘 가르쳐(לַ) 생명으로 이동을 원활하게 하다(ח)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창19:26의 롯의 아내는 뒤를(אַחַר종교성) 돌아봄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원활하게 영의 몸에 흐르지 않고 멈추어서 버린 기둥(נְצִיב고정된 것)이 된 것이다. 

    창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본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혼을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안에 혼의 말씀들을 가득채운채 살아간다. 그러한 우리에게 영의 말씀이 들어오게 되면 우리 안의 혼의 말씀들이(מֶ 멤,물) 점점 빠져나가게 되고, 마치 삼투압 원리를 이용한 소금 절임처럼, 세포의 수분이 줄어 들게 되고 생육이 저지되어 활동이 멈추어 지는 것처럼 우리의 혼의 활동도 서서히 멈추어 가는 것이다. 즉 우리의 종교적인 활동들이 멈추어져 가는 것이다.
    그래서 출 30:35에서 '너희의 종교적인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언급한 레 2:13와 출30:35의 말씀은,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치므로써 너의 혼적인 종교성은 빠져나가고 우리의 종교적 행위로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구나의 깨달음은 하나님의 코데쉬로 분리되리라'의 의미인 것이다.

    소금에 이러한 의미가 담겨져 있기에,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13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모라이노,μωραίνω)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 Ὑμεῖς ἐστε τὸ ἅλας τῆς γῆς· δὲ ἐὰν τὸ ἅλας μωρανθῇ, ἐν τίνι ἁλισθήσεται; εἰς οὐδὲν ἰσχύει ἔτι εἰ μὴ βληθὲν ἔξω καταπατεῖσθαι ὑπὸ τῶν ἀνθρώπων. )
    *의역; (말씀이 들어간)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 소금이 제 기능을 못한다면(모라이노,μωραίνω), 무엇으로 (세상에) 소금을 치겠느냐!(말씀이 영의 몸에 흐르지 못할 것 아니냐!)
    *한글 번역에서는 '그 맛을 잃으면'으로 번역이 되어있어서 그저 소금의 평범한 기능에만 포커스를 둔 것처럼 표현 되었으나,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어로 살펴보면 '제 기능을 잃으면 μωραίνω (אָבַד) '의 내용이 된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며, 또한, 마가복음 9:49에서는
    - 사람마다 불(성령의 불)로써 소금 치듯(말씀이 너희의 영의 몸에 흐르게) 함을 받으리라 ( γὰρ Πᾶς πυρὶ ἁλισθήσεται. )
    하신 것이다.

     

    소금은 하나님의 언약!

    영의 말씀이 들어와서 우리의 혼의 말씀들이 빠져나가는 이 소금은(מֶלַח 멜라흐), 우리의 능력으로 우리안에 들어 올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언약(בְּרִית 베리트)인 것이다. 언약은 그 기원이(בָּרָה 바라)인데, 바라(H1262 בָּרָה)는 '잘게 잘라서 먹이다'의 의미이다. 마치 예수님이 떡을 떼어서(κλάω 클라오) 우리에게 먹이시는 것과 같은 것이다.
    *참조: 마15: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κλάω 클라오)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κλάω [ klaō ] G2806 ;  1. 떼다 2. 뜯다 3. 깨뜨리다
     
    우리가 늘 말씀을 가까이하고 묵상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말씀인 떡을 떼서 깨뜨려서(κλάω 클라오) 우리에게 먹여주시는 그 언약(בְּרִית 베리트)을 반드시 우리안에서 행하실 것이다.

    히브리어 저울(모젠 מֹאזְן), 헬라어 저울(쥬고스, ζυγός )의 성경적인 뜻

      

    우리가 성경을 올바르게 살펴보고자 할때에는 바울의 말처럼 성경의 표면적인 의미도 살펴볼 필요가 있지만, 성경의 내면에 흐르는 이면적인 의미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시간에는 성경에 나오는 '저울'을 히브리어 저울, 모젠( מֹאזְן H3976)과 헬라어 저울, 쥬고스(ζυγός G2218)를 통하여 살펴봄으로써 이 단어의 좀더 깊은 이면적인 뜻을 알아보고자한다.
     
     

    히브리어 저울(모젠 מֹאזְן H3976), 헬라어 저울(쥬고스, ζυγός G2218)의 뜻

     
    시편 62장 9절에 저울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그 단어를 히브리어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시62:9 진실로 천한 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리로다'
    אַ֤ךְ׀ הֶ֥בֶל בְּנֵֽי־אָדָם֮ כָּזָ֪ב בְּנֵ֫י אִ֥ישׁ בְּמֹאזְנַ֥יִם לַעֲלֹ֑ות הֵ֝֗מָּה מֵהֶ֥בֶל יָֽחַד׃
     
    먼저 위의 문장을 히브리 원어에 맞게 풀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된다.
    '확실히 오직(אַךְ) 입으로 호흡하는 아담의 아들들이나 거짓을 말하는 말씀을 받았다하는 이(잇쉬 אִישׁ)의 아들들이나 저울안에서 즉, 성령으로 영의 말씀과 하나가 되어서 혼의 호흡으로 부터 위로 올라간다(עָלָה 올라)'
    히브리인의 저울

    여기에서 저울의 히브리어는 모젠(מֹאזְן H3976)이다. 그리고 이 단어의 어원은 아잔(אָזַן  H239)인데 그 뜻은 '깊이 생각하다, 심사숙고하다, 명확하다'이다.
    즉, 말씀을 명확하게 듣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다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한글개역 성경의 전도서 12:9에서는 아잔(אָזַן )을 말씀을 묵상한다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전12:9 전도자가 지혜로움으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묵상하고 (아잔(אָזַן )) 궁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한편, 저울은 헬라어로는 쥬고스(ζυγός G2218)인데, 그 의미는 '연합하다, 멍에를 함께지다' 이다.
    * 참조 ; ζυγός [ zügŏs ] 1. 멍에 2.저울대, ζεύγνυμι ‘연합하다’의 어간에서 유래
    -ζεύγνῡμῐ [ zeúgnūmi ]
    ( 능동태 ) 멍에를 메다, 안장을 씌우다 ,짐승( 말 , 소 , 노새 )을 굴레로 묶다 ; 준비하다 ( 마차 )
    ( 중간태 ) 자신의 짐승에게 멍에를 메게 하다, 단단히 고정시키다. 함께 참여 하거나 연결 하다, 결혼 에 참여하다
     
     

    '저울'의 영적인 의미

    그러므로 히브리어 모젠과 헬라어 쥬고스의 의미를 같이 묵상해 보면, 저울이 가지고 있는 이면적인 의미는 말씀을 심사숙고하고, 깊이 잘 생각해서 말씀과 연합되어진다, 말씀과 하나가 되어, 균형을 이룬다는 의미가 된다. 즉, 저울에 달면 들려 입김보다 경하여 들리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하나되어 동등한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 저울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저울은 어떤 곡식이나 열매들을 한데 모아서 하나의 덩어리(달란트,키카르), 즉 어떤 Being를 이루게 되는 것인데, 말씀의 측면으로 본다면, 저울(מֹאזְנַ֥יִם 쌍수)은 성령에 의해 영의 말씀을 잉태하여 부활하는 곡식들( בָּר H1250), 아들들(בַּר H1247), 상속자들을(בַּר H1248) 한데 모아 어떤 Being을 이루게 되는 즉, 영의 소마를 이루게 되는 것임을 알수가 있다.
    이는 위의 시편62:9에서 풀어 보았던
    '저울안에서 즉, 성령으로 영의 말씀과 하나가 되어서 혼의 호흡으로 부터 위로 올라간다'는 내용과도 일치되는 것이다.
    *참조
    - H1250 [ bâr ] 1.곡식 2.들판에서 자라고 있는 ‘곡식’도 포함됨 시65:14 3. 들판 (  불순물을 골라 없애고 분리하고 선별하여 모은 곡식을 의미함.)
    - H1247 [ bar ] 1.아들 2.손자
    - H1248 [ bar ] 1.상속자 2.아들
     

    영의 말씀을 혼의 말씀으로 섞지말자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짓 저울이란 영의 저울이 아닌 우리 혼이 만들어낸 저울을 말씀하시는 것이지, 우리 일상의 매매와 관계된 저울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참조; 거짓 저울(מֹאזְנֵ֣י מִ֭רְמָה) (레19:35~36, 잠11:1, 호12:7)
     
    잠언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잠11:1 속이는 저울(מֹאזְנֵ֣י מִ֭רְמָה 모젠 미르마)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אֶ֖בֶן שְׁלֵמָ֣ה 에벤 살렘)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이 말씀을 원어에 맞게 의역해 보면, '말씀과 하나가 되었다고 속이는 것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너희안에 보이는) 완성된(살렘) 하나님의 아들(에벤,단수)은 기뻐하신다.'이다. 
    이 말씀은 에스겔서에 나오는 말씀과 같은 의미의 말씀이다.
    '겔 37:14. 내가 또 내 영(רוּחַ 루아흐, 성령)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말씀의 영이 우리안에 들어오면 그것이 완성된 하나님의 아들(예수 그리스도)이고 그것이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속이지 않는 저울, 모젠인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의 설교들을 찾아보면 시편 62:9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라는 식의 말씀 전달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러한 식의 말씀 전달은 시62:9절에서도 나오듯이 말씀은 받았으나 거짓을 말하는 잇쉬가 되어 말씀을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5장 22절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요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 말의 뜻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아들의 영, 그리스도의 영과 하나가 되지 못하면, 우리 스스로 심판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요3:18).
     
    '요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ὁ πιστεύων εἰς αὐτὸν οὐ κρίνεται· δὲ ὁ μὴ πιστεύων ἤδη κέκριται, ὅτι μὴ πεπίστευκεν εἰς τὸ ὄνομα τοῦ μονογενοῦς υἱοῦ τοῦ θεοῦ.
     
    그러므로 우리는 영의 말씀으로 주신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깨달아서 그 말씀을 혼으로 섞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포칼립스(ἀποκάλυψις)와 쉐마(שְׁמַע) 이스라엘의 뜻

     요한계시록 1:1절에는 '아포칼립스'가 나온다. 또한, 신명기 6:4절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쉐마 이스라엘'이 나온다.

    이 구절이 서로를 잘 설명하면서 이 두 단어의 영적 의미 또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아포칼립스의 뜻

    아포칼립스(ἀποκάλυψις G602)는 드러냄, 계시, 벗김의 의미이다.

    이 단어의 어원을 보면, 아포(ἀπό G575) + 칼립토(καλύπτω G2572)인데 여기서 아포(ἀπό G575)는 '~으로부터, ~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의 의미이고, 칼립토(καλύπτω G2572)는 '도둑질해서 숨겨놓다'의 의미이다. 즉, 이 단어의 뜻은 '도둑질해서 숨겨놓았던 것으로부터 드러나다'이다. 한글 번역에서는 '요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라고 번역을 하였으나, 이를 원문에 맞게 정확히 표현한다면 '요1:1 도둑질해서 숨겨놓았던 것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다'라는 의미가 된다. 의역하면 '우리의 영의 죽음으로 인해 가려졌던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제 우리 안에 나타나심'이라 볼 수있다.  



    쉐마(שְׁמַע)의 뜻

    이스라엘 성서 공회에서 신약을 히브리어로 기록한 성경에서 요한계시록 1:1절의 아포칼립스(ἀποκάλυψις G602)을 보면 하쉬마우트(הַשְׁמָעוּת H2045)로 되어있다.

    이 하쉬마우트는 그 어원이 쉐마(שָׁמַע H8085)이다. 이 단어는 '듣다,경청하다,순종하다,복종하다'의 의미가 있고, 좀 더 묵상해보면 '분석된(שָׁ) 말씀(מַ)을 깨닫다,알아듣다(ע)' 즉,'주시는 말씀의 내면적인 뜻을 깨닫다, 제대로 알아듣다'의 의미가 있다. 그래서 사무엘상 15:22절에서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삼상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שָׁמַע 말씀을 알아듣는 것)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שָׁמַע 말씀을 알아듣는 것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קָשַׁב 주위를 (제사들이는 것에) 집중하다) 나으니

    여기서 잠시, 신명기 6:4절에 나오는 쉐마 이스라엘의 '이스라엘(יִשְׂרָאֵל)'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יִשְׂרָאֵל)의 뜻

    ' יִשְׂרָאֵל H3478'이 단어를 분석해 보면, 그 뜻은 '다투는 자'인데, 그 어원은 H8280과 H410이다. 

    H8280 (שָׂרָה)는 '권력을 쥐다,통치를 시작하다,싸우다' 이고 H410 (אֵל)은 '강한,힘,신'의 의미이다. 또한, 이스라엘이라는 단어가 가장 처음 나온 창32:28절을 보면 그 안에 두가지의 의미가 있음을 알수있다. 

    창 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의역; 네가 하나님과 다투웠기에(완료형) 말씀을 받았으나 병든 자들과도 능히 싸우리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자신의 머리로 이해하므로 하나님과 싸우는 자이며, 그러나 은혜로 인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말씀들과도 싸워서 이기리라'의 의미이다. 왜냐하면, 윗 문장에서의 '싸우다'는 '사라(שָׂרָה H8280)'인데 이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שָׂרַר 주권을 소유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 받아 바뀐 이름과 같기 때문이다(사라 שָׂרָה H8283). 그리고 바로 다음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라에게 그리스도를 낳을 수 있는 복을 주신다. 

    17:15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17: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벤 בֵּן 단수형,갈3:16)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이스라엘은 말씀을 받아서 처음에는 종교적 열심으로 자기자신을 권력으로 쥐고 통치하며, 하나님과 다투는 자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하나 둘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말씀들이 무너져가는 자를 말한다. 이를 호세아서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호12:3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12:4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또한,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러한 과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롬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3: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3:21 (누니데 δὲ Νυνὶ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δωρεάν 이유없이 받은 선물)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아포칼립스와 쉐마 이스라엘의 영적인 의미

    처음으로 돌아가서, '아포칼립스'는 구약에 '쉐마 이스라엘'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는 이스라엘이 아닌, 그 이면의 내용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값없이 받는 이스라엘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약도 이와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포칼립스'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요1:14) '예수'를 넘어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안에 거하기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그 우리의 도둑질로 인해 숨겨졌던 영,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안에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의 의미이다.

    행13: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이름을 바꾼 바울의 의미

     

    -행13: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πλήθω, 플레토 G4130, מָלֵא H4390)그를 주목하고

    사도행전 13:9절에는 사울이 바울로 그 이름이 바뀌는 구절이 나온다. 

    바울은 왜 사울에서 바울로 이름을 바꾸었을까?

    사울(Σαῦλος G4569)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H7586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울(שָׁאוּל H7586)은 히브리어 샤알(שָׁאַל H7592)에서 왔는데, 샤알의 의미는 '문의하다,요청하다,구하다'이고 사울은 샤알의 수동태 분사로써 '간구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잘 알려졌듯이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게 '우리에게도 왕을 주소서'하고 요청하여 세워진 초대 왕이다. 그래서 사울의 의미를 '우리가 하나님에게 간구하여 받은 왕'으로도 볼 수가 있다. 

    한편 이 사울과 같은 철자를 사용하나,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글자가 있다. 그것은 스올(שְׁאוֹל H7585)이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스올은 '지옥, 무덤, 구덩이'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조금 벗어난 내용이지만, 위의 내용들과 함께 묵상하여보면, 성경이 말하는 지옥이란, 우리가 말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려주소서' 하면서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해석하고는 그것이 하나님이 맞다고 확신하며 가르치고 따르고 하는 상태가 곧 지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내가 너희안에 너희가 내안에'의 상태가 되지 못한다면, 이 지옥은 육체의 시간이 끝난다하더라도 크로노스의 상태로 영원히 계속 될 것이다.

    바울은 원어로 살펴보면 두가지의 의미가 나타나는데, 먼저 헬라어 바울은(Παῦλος) G3972인데, 헬라어 파우오(Παῦλος G3973)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파우오(G3973 Παῦλος)는 '멎게 하다,멎다,그치다'의 의미가 있는데, 이 의미는 아나파오우(ἀνάπαυσις G372)를 살펴보면, 좀 더 명백하게 그 뜻을 알수가 있다. 아나파우오는 안식를 의미하는 단어로써 '위로 올라가려는 것을 멈추다'의 의미이다. 즉, 내가 하나님에게로 스스로 나아가려는 종교성을 멈추고 안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라는 그 이름 속에는 바리새파로 있었을때의 종교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이후에 멈추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히브리어로는 풀(פּוּל H6322 פּוֹלוֹס)인데, 이디오피아 부족의 왕의 이름 뿔, 앗수르 왕 불 그리고 꽁을(פּוּל H6321) 가리키는 단어이다. 

    특히 콩을 주목하여 단어를 묵상해 볼 필요가 있는데, 원래 콩은 콩 꼬투리(꽁깍지)안에 있는 열매이며, 동시에 씨앗이다. 열매로서 인간에게 유용할 수도 있고, 씨앗으로 새 생명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 이를 바울에 적용하면, 바리새인의 열매로서 바울은 유대인에게 유익할 수도 있었고, 예수교에서는 새로운 생명들을 자라게도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히브리어 꽁(פּוּל H6321)을 묵상하여 보아도 비슷한 의미가 나온다. ‘배움을 하나님을 증거하는 입에 묶다’, 의역하자면, 바울이 배운 구약의 모든 내용이 오직 하나님을 증거하는 입으로만 사용되다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의 모든 서신서들을 보아도 이는 맞는 말인듯 하다.

    사울이 바울로 바뀌는 구절을 다시보면, 이러한 내용이 쉽게 이해가 된다.

    -행13: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πλήθω, 플레토 G4130, מָלֵא H4390)

    성령은 말씀을 의미하므로 행13:9절은 플레토, 즉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이 가득차서 바울이 설교를 시작하는 모습이라 할 수있다.


    *참조:

    -사66:19 내가 그들 중에 징조를 세워서 그들 중 도피한 자를 열방 곧 다시스와 뿔(פּוּל H6322이디오피아 부족의 이름)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열방에 선파하리라

    -열왕기하15:19 앗수르 왕 불이 와서 그 땅을 치려 하매 므나헴이 은 일천 달란트를 불에게 주어서 저로 자기를 도와주게 함으로 나라를 자기 손에 굳게 세우고자 하여 15:20 그 은을 이스라엘 모든 큰 부자에게서 토색하여 각 사람에게 은 오십 세겔씩 내게 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니 이에 앗수르 왕이 돌이키고 그 땅에 머물지 아니하였더라

    -삼하17:27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실래가17:28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פּוּל H6321)과 팥과 볶은 녹두와17:29 꿀과 뻐더와 양과 치스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 함께 한 백성으로 먹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

    -겔4:7 너는 또 에워싼 예루살렘을 향하여 팔을 벗어 메고 예언하라4:8 내가 줄로 너를 동이리니 네가 에워싸는 날이 맞도록 몸을 이리 저리 돌리지 못하리라4:9 너는 말과 보리와 콩(פּוּל H6321)과 팥과 조와 귀리를 가져다가 한 그릇에 담고 떡을 만들어 네 모로 눕는 날수 곧 삼백구십 일에 먹되4:10 너는 식물을 달아서 하루 이십 세겔 중씩 때를 따라 먹고4:11 물도 힌 육분 일씩 되어서 때를 따라 마시라4:12 너는 그것을 보리떡처럼 만들어 먹되 그들의 목전에서 인분 불을 피워 구울지니라


    질투, 열심 (킨아 קִנְאָה,카나, 젤로스 ζηλός)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지체하지말고 서둘러서, 영에 대한 끓는 열심으로 주에 묶이라(복수형)),  G 2204 끓다 행18:25(아볼로) 히브리어 ‘킨아’(קִנְאָה, qin’ah)는 ‘질투하다, 부러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