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울의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란 어떤 의미일까?
- 고후 12: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σάρξ 사륵스, 손질해서 잘 쓰려는 몸,육신)에 가시(σκόλοψ G4647=4628 + 3700) 곧 사단의(Σατανᾶς 사타나스) 사자(ἄγγελος 앵겔로스)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콜라피조 G2852, 나카 נָכָה H5221)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 '가시,스콜롭스(σκόλοψ)'의 의미는 '말뚝,막대기,가시(G4647)'인데, 이단어는 G4628과 G3700의 합성이다.
먼저 G4628은 '다리(G4628 σκέλος)'를 의미하는데, 이 단어는 '여위다'의 뜻에서 유래하였다. 또한, 이 '다리(G4628 σκέλος)'라는 단어는 신약에서 오직 요19:31,32,33에서만 쓰였다.
아시다시피 이 구절은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예수님의 다리만 꺽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는 구절들이다. 이 구절들이 의미하는 것은 '이미 죽어서, 다시 살아나 도망갈 수 없으니 다리를 꺽을 필요가 없다'의 뜻을 담고 있다.
나머지 한 단어 '옾타노마이G3700(ὀπτάνομαι)'는 '나타나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보여지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호라오(G3708 ὁράω)와 같은 단어로 볼 수 있다(마5:8, 눅13:28 행7:30 고전15:5 막9:4, 눅1:11, 행9:17.등에 쓰임). 그 속의 의미는, 그리스도를 깨달아 알게 된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가시,스콜롭스(σκόλοψ)는 히브리어로 'קוֹץ H6975'인데 'H6972 추수기를 보내다, H7019 ‘잘라내다’에서 유래하였다. 이를 묵상해 보면 '추수기가 지나서 혼적 열매는 모두 떨어지고 잘라낼 가시들만 남은 상태'를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곧 사단의 사자'는 원어로 '사타나스 엥겔로스'인데, 사단은(Σατανᾶς 사타나스,G4567) 대적자를 의미한다. 쉽게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과 대적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고, 사자(ἄγγελος G32)는 '소식을 전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사단의 사자는 '하나님의 뜻에 반(反)하는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 그리고 고후12:7절에 나오는 '(나를) 쳐서'는 헬라어로 '콜라피조' G2852, 히브리어로는 나카(נָכָה H5221)이다.
'콜라피조'는 마26:67, 막14:65에서는 '(예수를)주먹으로 치다'로 사용하였으며, 고전4:11과 벧전2:20에서는 '매 맞다'로 사용되었다. 또한, 이 단어 '치다'의 히브리어 나카(נָכָה H5221)는 '세게 때리다,(므비보셋)절름발이의, (모세가 반석을)치다'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단어는 '씨가 열려서(터져서) (영의)숨을 쉬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종합하여 보면 육체의 가시란, 바울이 많은 하나님의 계시를 알게 됨으로 스스로 높아져서 이전(사울)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됨으로 천하를 호령하며 대단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자신은 이미 혼으로 돌아갈 수 없는 죽은 상태임을 깨닫게 된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는 바울의 의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육적 다리가 죽어서 다시 혼으로 돌아가지질 않는다는 것의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돌아간들 그렇게 돌아가서 전하게 되는 것은 예수를 대적하는 말씀들 뿐이라는 의미가 '사단의 사자'이다.
이러한 내용을 뒷바침 할 수 있는 것은 이 문장의 앞과 뒤의 내용들이다.
고후 12장 앞부분은 그가 부득불 자랑하는 삼층천 이야기와 하나님이 열어 주신 비밀의 내용들로 인해 자신이 자고 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또한, 뒷 문장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하는 말도 한다. 이 말 속에는 자신이 다른 큰 사도들 보다 구약에 대한 지식면에서는 전혀 부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 우리가 바울 서신들을 통해 보아도 바울의 구약에 대한 탁월함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한 그가 다시 육적 행함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메세지를 전하지 못하게 마치 주님의 다리가 십자가에 못 박히듯 못을 박아 놓으신 것이 곧 바울의 육체의 가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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