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18, 2025

원어로 살펴본 로마서 1장 1절

원어로 살펴본 로마서(1장1절)

롬 1:1 원문과 한글 번역:

"Romans 1:1 Παῦλος δοῦλος Χριστοῦ Ἰησοῦ, κλητὸς ἀπόστολος, ἀφωρισμένος εἰς εὐαγγέλιον θεοῦ

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εἰς~속으로) 택정함을 입었으니"

1. 바울이 로마서를 쓰게 된 배경

오순절 사건이후 로마로 돌아간 유대인들에 의해 초대 로마 교회가 처음 생겨났고 그 교회들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유대공동체와 로마에 전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유대인 공동체뿐 아니라 유대인과 로마인, 유대인과 헬라인 간의 갈등과 충돌이 심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이에 글라우디오 황제는 첫 단계로 충돌을 자제하라고 권고했으나, 효과가 없자 집회를 금지했고, 그마저 효과가 없자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다(행18:2).

이 추방령으로 약 25,000명이 로마를 떠났으며, 그중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포함되었다. 클라우디오 황제 사후,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이 로마로 돌아왔다. 이들과 달리 예수를 믿던 헬라인들은 처음부터 떠나지 않았기에 로마에서 계속 믿음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온 유대인 교인들과 헬라인 교인들 간에 또 다시 갈등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초기와 달리 헬라인 교인들의 비율 더 많았다고 한다(롬1:13,롬16장). 갈등의 주요 내용은 복음을 받아들인 이후에도 율법(할례, 음식규례 등)을 지켜야 하느냐, 아니면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느냐였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그들이 복음이 율법을 대체하는 하나님의 주권적 계획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갈등이 일어난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즉, 그들이 '하나님의 복음'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된다면, 그들이 각자 주장하는 것들은 더이상 무의미 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보았기에 서신을 보내게 된 것이다.

2. 종(δοῦλος둘로스/עֶבֶד에베드)

둘로스는 헬라어 동사 '묶다, 데오(δέω)'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므로 1장1절의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에 묶여있는 바울'이라는 표현이 더 나을 수 있다. 왜냐하면, 성도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3. 사도(ἀπόστολος아포스톨로스/שָׁלַח샬라흐)

사도를 뜻하는 헬라어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ος G652)는 G649에서 유래하였는데, G649는 G575(~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와 G4724 (피하려고 떠나다)의 합성어이다.  합성된 이 두 단어를 묵상해보면, 그 의미가 '예수로 부터 떠나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보내어진 자'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사도의 히브리어인 샬라흐(שָׁלַח G7971)에서도 이러한 것을 확인할 수가 있는데, 샬라흐는 '보내다, 떠나보내다'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특이하게도 예루살렘 서쪽 시온에 있는 수로 ‘실로아’를 뜻하기도 한다.

이 개념은 요한복음 9장에서도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요한복음 9장에는 예수님이 소경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는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실때 성경은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라고 설명을 해 준다. 이는 '예수로 부터 그리스도에게 보냄을 받았다'의 내용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눈에) 바르시고'의 단어를 '기름을 붓다(ἐπιχρίω)'의 '에피크리오'로 쓰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많이 알려진대로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ἐπιχρίω) 받은 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요9: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이렇듯 헬라어와 히브리어 모두 '사도'는 '그리스도에게 보내진 자'를 의미한다.  

말씀이신 분이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 또한 하나님으로 부터 사도로 보내심을 받으신 분이시다(히3:1,요20:21).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12 제자에게   

이렇듯 사도는 성령의 능력을 받은 자 마태10:1, 

보냄은 말씀 선포이다.사6:8,렘1:7,겔2:3,4, 그리고 롬10:14,15 그 선포된 말씀이 능력이 되셔서 물이 되고 불이 되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보낸 자들을 통해 확인할수있다

4. 부르심을 받아(κλητός 클레토스 G2822, קָרָא 카라 H7121)

 바울은 롬1장1절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장면은 출애굽기 19장을 자세히 보면, 바울이 말하는 '부르심'의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출애굽기 19장에는 여호와께서 모세를 부르시(קָרָא 카라 H7121)는 내용이 나온다(출19:2,20). 그리고 여호와께서 부르신 모세 외에는 여호와께서 정하신 그 지경을 넘지 못하게 하신다(출19:12). 여기서 알수 있는 것은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는 '오직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것 처럼 하나님께서 바울을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에 묶여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이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직접 행하시는 '하나님의 복음'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출19:12 너는 백성을 위하여 사면으로 지경을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지경을 범하지 말지니 산을 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

5. 하나님의 복음(εὐαγγέλιον G2098 유앙겔리온, בְּשׂרָה H1309 베소라)의 참 뜻

 1)헬라어로 보는 하나님 복음의 참 뜻;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14,15에서 복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βασιλεία G932 바실레이아+θεός G2316)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πιστεύετε ἐν τῷ εὐαγγελίῳ) 하시더라'

바실레이아(βασιλεία G932)는 왕국,왕권,천국,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의미하는데, 이 단어의 어원은 바시스(βάσις G939 발)로 '발' '걷다'를 의미하며, 히브리어로 보면, '머리를 이동시킨다'의 의미를 품고 있다(רֶגֶל H7272). 

이르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직접 컨트롤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영의 영역으로 인도하시는 나라"의 의미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하나님에게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말씀하신다. 즉, "우리의 능력과 행함으로 하나님에게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에게로 나아가 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이니 하나님에게로 회개하고 그 기쁜 소식을 믿어라"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의 천국복음인 것이다.

2)히브리어로 보는 하나님 복음의 참 뜻; 

복음의 히브리어는 베소라(בְּשׂרָה H1309,롬1:1)이다. 그리고 바울은 이 베소라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하여 로마서 1:3에서 육신(בָּשָׂר 바사르/σάρξ 사륵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베소라(בְּשׂרָה)와 바사르(בָּשָׂר )는 같은 단어이지만, 하나님의 영을 의미하는 헤(ה 숨,호흡)가 있고 없음의 차이가 있다. 즉, 베소라는 하나님의 호흡이,영이 육신과 함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바사르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시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상태는 하나님이 창세기6:2에서 말씀하신 것 처럼 육신에서 생겨난 하나님의 아들들이 딸들의 아름다움에 유혹되어 그 딸들을 자꾸 추구하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신(בָּשָׂר)에 더 이상 하나님의 영(רוּחַ H7307)이 함께하시지 않기로 하신 그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창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רוּחַH7307영,호흡)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בָּשָׂר 바사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창세기6:3절 이후로는 육신에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는데, 그 영이 우리의 육신에 다시 오셨다고 하는 것이 기쁜 소식, 베소라(בְּשׂרָה)인 것이다.

하지만, 이 복음은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에 기인하는 것이기에 바울은 롬1:1에서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적어 놓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 베소라(בְּשׂרָה),복음을 우리의 열심으로도 이루어 낼 수 있다고 행한 것이 이스라엘이였다. 하지만 '하나님의(소유격) 복음'이라고 바울이 표현함으로써 이 복음은 인간의 노력이나 자격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구속의 역사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실제로 바울의 서신 속에서만, 이 '하나님의 복음(εὐαγγέλιον θεοῦ)'이라는 표현이 대부분 나온다(롬1:1,롬15:16,고전9:18,고후11:7,데살로니가전서2:2,8,9,딤전1:11). 

예수님 또한, 본인의 입으로 '복음'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는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라는 표현을 쓰셨다(막1:14,15,눅4:43,눅8:1,눅16:16). 이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직접 컨트롤하시는 복음'이라는 것을 예수님도 강조하신 것이라 볼 수 있다.

6.'택정함을 입었으니' '(하나님에 속한 복음 안으로) 분리되어졌다(수동태), 따로 구별되어 두다'

 '분리하다'의 헬라어는 아포리조(ἀφοριζω G873)이다. 이 아포리조는 아래 구절들에서 보듯이 '분리시켜서 어디엔가 두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G575(~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와 G3724((하나님이 어떤 것을)정하다)에서 유래)

-마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분리해내어(ἀφοριζω G873)

-마25: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그 자신으로부터 서로를 분리하기를(ἀφοριζω G873) 목자가 염소들에서 부터 양을 분리하는(ἀφοριζω G873) 것 같이 하여 25: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양과 염소에 대하여 잠시 설명을 하면, 염소는 독립적이고 탐험적인 성격이여서 새로운 목초지를 탐색을 할때 선두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반면 양은 온순하고 순응적인 성격이며 오로지 앞만 보면서 선두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어서 염소를 따라 새로운 목초지로 옮겨갈 수 있었다. 
이 모습은 예수님과 우리들의 모습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때 예수님과는 분리가 되고 영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택정함을 입었으니'의 해석은 '(육신으로 부터 떨어져 나의 영이)하나님이 행하시는 복음 속으로 분리된 자이니라'라고 볼 수 있다.

7. 결론


1장1절은 모두 주격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사는 아포리조 하나이므로 이에 따라 1장 1절을 정리해서 의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부르심 받은 사도이며 예수 그리스도에 묶인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 속으로 혼으로부터 떨어져 나의 영이 분리된 자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인하여 그 경계선을 넘어 그리스도에게 보내어져 예수 그리스도에 묶인 나, 바울은 나의 육신과 떨어져 나의 영이 하나님이 직접 컨트롤하시는 복음을 향하여 그 안으로 완전히 구별되어졌느리라."
그리고 바울은 '너희도 이러한 부르심 속에 있는 자들이기에 그 복음의 참 의미를 안다면, 너희들의 갈등의 내용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로마서 1장 1절은 바울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부르심을 받고, 육적인 자아에서 분리되어 복음의 영역으로 옮겨졌음을 선언하는 구절이다. 그는 이를 통해, 로마 교회 내의 율법과 복음을 둘러싼 갈등이 인간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복음 안에서 재해석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1장 2절은 'ὅς 호스'라는 목적격으로 시작한다. 한글 번역은 '이 복음은'이지만, 원문에 맞게 번역하면, '이것을'이다. 결론적으로 1장 2절의 'ὅς 호스'라는 목적격과 문맥이 통하려면, 위의 의역이 맞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이 말한 고린도전서9:1절을 보면 좀 더 그 의미를 이해하기가 쉽다.(고전9:1 내가 자유자(חָפְשִׁי)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ὁράω 호라오)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פֹּעַל가르쳐 깨닫게하여 증거하게 하다)이 너희가 아니냐). 

기도의 어원과 의미(προσεύχομαι 프로슈코마이)(פָּלַל 팔랄,תְּפִלָּה 테필라)

기도의 본래 의미에 대한 묵상
기도는 헬라어로 **‘프로슈코마이’(προσεύχομαι, G4336)**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두 개의 헬라어 어근에서 유래합니다.
첫째는 **‘프로스’(πρός, G4314)**로, ‘~을 향하여’, 또는 ‘관계적으로 가까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둘째는 **‘유코마이’(εὔχομαι, G2172)**로, ‘바라다’, ‘간구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프로스’의 더 깊은 어원은 **‘프로’(πρό, G4253)**로, ‘~전에’ 또는 ‘이전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러한 어원적 흐름을 종합해 보면, 헬라어로 된 ‘기도’는 단순히 어떤 것을 요청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과 단절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를 간구하는 행위’**라는 깊은 영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기도’는 **‘팔랄’(פָּלַל, H6419)**이라는 단어로 표현됩니다.
이 단어의 일반적인 의미는 **‘심판하다’, ‘중재하다’**입니다.
하지만 더 깊이 묵상해 보면, 팔랄은 단순한 요청 이상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를 가르쳐 주시고, 그 가르침을 따라 내가 하나님을 증거하는 입이 되게 해달라는 간구’,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내가 존재적으로 죄인임을 심판해 주시고, 그런 나를 긍휼히 여겨 중재해 달라는 요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참된 기도란,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을 구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처음 자리로 나를 이끌어 달라는 간절한 소원이어야 하며,
나의 죄악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구하는 동시에, 그분의 자비로 나를 중재해 주시기를 간청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기도가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경적이고 영적인 기도인 것입니다.



 


* 프로슈코마이 (προσεύχομαι G4336=4314(πρός 프로스, ~을 향해 가까이->4253 πρό 전에) + 2172바라다,간구하다= 하나님과 단절 되기전으로 돌아가길 구하다), 

* פָּלַל 팔랄 H6419 심판하다,중재하다(나를 심판해 주세요, 중재해 주세요)=>(가르치고 가르쳐 증거하는 입이 되길 구하다)

* תְּפִלָּה 테필라 8605(가르쳐 십자가를 증거하는 입으로 영의 숨을 쉬다))

Monday, May 12, 2025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의미

 

📖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의미 📖

1.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

요한일서 4장 7~8절은 우리가 잘 아는 대표적인 사랑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7-8)

이 말씀은 곧, 사랑의 근원은 하나님 자신이며, 하나님을 아는 자만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음을 선포합니다.

2.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한 집에서 호흡하는 것’, 즉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안에 있는 것을 뜻합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어를 살펴보면 이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 요일 4:8의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에서 **‘사랑’(히. אַהֲבָה, 아하바)**는 어원적으로 **‘호흡을 함께하다’, ‘함께 집에 묶이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 이는 하나님(א)과 호흡하는(הֵ) 집(ב)에 함께 묶이는(וֹ) 것, 즉 하나님과의 내밀한 동거와 교제를 표현합니다.

  • 헬라어 원문도 "ὁ θεὸς ἀγάπη ἐστίν" —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3. 사랑의 실제적 모습: 함께 사는 호흡

사람이 사랑하게 되면 결국 결혼하여 한 집에서 살며, 함께 호흡하고 일상을 나누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사랑도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실제적인 관계입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는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습니다. A와 B가 결혼하기 전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도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야만 진정한 사랑의 관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이웃 사랑이란?

레위기 19:18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히. וְאָהַבְתָּ לְרֵעֲךָ כָּמוֹךָ)

히브리어 원문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의미가 드러납니다:

  • “같이(כָּמוֹךָ)”는 단순히 ‘네 몸처럼’이 아니라, **‘자기 부인의 말씀과 씨를 묶은 것 같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이웃(רֵעֲךָ, 레아)”는 ‘머리가 영을 깨닫게 하는 씨’, 즉 ‘깨달음을 주는 존재’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게다가 “레아”의 어근인 **“라아(רָעָה)”는 ‘방목하다, 먹이다, 다스리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이는 ‘생명을 유지하는 호흡과 깨달음을 주는 존재’를 뜻합니다.


❤️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본질

결국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사랑이란 하나님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것이고,
이웃 사랑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의 호흡을 나누는 것,
그분과 한 집에서 살아가듯 친밀한 관계를 나누는 것입니다.


📌 요약

  •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 히브리어 ‘사랑’의 뿌리는 ‘호흡’, ‘동의’, ‘집에 묶이다’의 뜻을 갖는다.

  • 이웃 사랑은 단순히 이웃에게 잘해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적 호흡을 나누는 관계를 말한다.

  • 이 모든 사랑의 근본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교제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다.

Friday, May 9, 2025

구름과 기둥, 우리의 삶 안으로 들어오신 그리스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이 떠오르면 천막을 걷고, 행진을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광야 교회의 삶(행 7:38)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진을 치고 살아간다. 

그 진은 곧 우리의 인생이다. 그러나 그 여정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임하면,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진을 걷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 진을 치며, 새로운 하루를 살아간다. 

 이 여정의 중심에는 구름과 구름기둥이 있다. 그것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현존이다. 예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통해 그리스도를 인식하고, 그 사실을 입으로 증거하게 될 때—출애굽기 40장 36절과 민수기 9장 17절의 히브리어 원문이 말하듯—‘구름이 장막에서 올라가’게 된다. 곧, 우리는 진을 걷고 다시 길을 나서게 된다. 

 구름이 진에 머물러 있는 동안, 그것은 마치 안개처럼 진 전체를 덮은 듯한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구름은 안개보다 훨씬 더 많은 물기와 밀도를 지닌 존재다. 우리가 지금 그 구름에 둘러싸인다면, 단순한 습기 이상의 것을 경험할 것이다. 마치 물세례를 받는 것처럼, 성령의 충만함으로 젖게 될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2절에서 이 신비를 이렇게 증언한다.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고…” 

 구름 가운데 거한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한다는 의미이다. 이 구름은 낮에는 백성을 덮었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되었다(출 13:21–22). 이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때가 아직 낮이 아니냐”(요 11:9)라는 말씀과 이어진다. 곧, 낮은 주님의 일하심의 때이며, 우리는 그분의 때에 맞춰 따라가야 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반드시 ‘구름’과 ‘기둥’을 구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구름 모양’, ‘구름기둥’이라는 표현을 구분하여 사용한다. 이 두 단어는 상징적으로도 차이를 가진다. ‘기둥’은 고정된 구조다. 하지만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 **롯의 아내가 된 ‘소금기둥’(נְצִיב, 네시브)**과, 삼손이 무너뜨린 기둥(삿 16:29), 그리고 **광야에서 백성 앞에 선 구름기둥(עַמּוּד, 아무드)**은 서로 다른 용례를 갖고 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아 멈춰버린 존재로서, 세상 것에 마음이 멈춰버린 기둥(נְצִיב)이며 영의 흐름이 멈춰버린 쓸모없는 소금이다. 반면, 삼손과 광야에서 등장하는 기둥(עַמּוּד)은 눈에 보이는 권위와 구조물, 곧 종교의 형상을 뜻한다. 삼손이 무너뜨린 기둥처럼, 하나님은 때로 이러한 종교 구조를 무너뜨리신다. 욥기 26장 11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의 권능으로 하늘의 기둥(עַמּוּד)들이 떨며 그가 꾸짖으시매 놀랐도다.” 

 즉, 하나님은 단지 종교적인 구조물 속에서 예배받기보다, 우리가 그분과 하나가 되길 원하신다. 고정된 기둥 안에서 머무르기보다, 구름 가운데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서 하나가 되길 원하신다. 

 결국 구름은 단지 하나님의 인도만을 상징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와 하나가 되기 원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을 상징한다. 구름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나는 세례의 여정으로 이끈다. 광야 같은 우리의 신앙 여정 속에서, 우리는 단지 예수의 이름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분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내가 너 안에, 너가 내 안에 거하리라”(요 14:20)의 삶이다.

질투, 열심 (킨아 קִנְאָה,카나, 젤로스 ζηλός)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지체하지말고 서둘러서, 영에 대한 끓는 열심으로 주에 묶이라(복수형)),  G 2204 끓다 행18:25(아볼로) 히브리어 ‘킨아’(קִנְאָה, qin’ah)는 ‘질투하다, 부러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