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ugust 1, 2024

살인하지 말라, 형제의 영을 죽이지말라. 마5:21의 본질의 말씀 (라차흐 רָצַח,포뉴오 φονεύω)


[살인하지 말라, 형제의 영을 죽이지말라. 마5:21의 본질의 말씀]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1)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21절에서 말씀하신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은, 5장의 전체 문맥 안에서 보면, 먼저 구약의 말씀을 가르치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마 5:17, 19, 20). 지금으로 말하자면, 이는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 전도사, 신학자, 성경 교사들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옛 사람에게 말한 바”는 구약을 가리키며, 관주성경에 따르면 이는 출애굽기 20:13과 신명기 5:17과 연결됩니다.

-출 20:13 살인하지(רָצַח 라차흐) 말지니라

-신 5:17 살인하지(רָצַח 라차흐) 말지니라

이 두 구절에서 ‘살인하다’는 단어는 히브리어 **רָצַח (라차흐, H7523)**인데, 그 뜻은 *“산산조각으로 부수다, 죽이다, 살해하다, 바스러뜨리다”*입니다.

영적으로 해석하면, “낚시바늘로 생명의 머리를 낚아서, 그 머리가 영의 생명을 깨닫지 못하도록 산산조각 내다”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 ‘라차흐’는 구약 전체에서 47번 등장하며, 그 중 무려 20번이 민수기 35장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민수기 35장은 도피성에 대한 장입니다.

따라서, 마 5:21에서 말하는 “살인자”는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는 살인자, 즉 실수로 살인한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도피할 수 있는 살인자는 누구인가?

-민 35:6 “레위인에게 줄 성읍 중 여섯은 살인자가 피할 도피성이며…”

-민 35:11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실수로 살인한 자가 피하게 하라”

-신 19:4-5 “원한 없이, 알지 못하고, 실수로 이웃을 죽인 자는 그리로 피하여 살게 하라”

특히 신 19:5의 사례는 구체적입니다: 도끼 자루가 빠져 이웃을 죽게 한 경우처럼 부지중에 생명을 해한 자를 말합니다.

이 내용을 종합하면, 도피성으로 도망할 수 있는 자는:

원한 없이 알지 못한 실수로 상대방의 혼을 해하고 굴복시켜 영의 생명을 깨닫지 못하게 한 자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열매 맺기 전에 상대방을 혼에 묶어버린 자, 다시 말해 영적인 살인을 행한 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미워하는 마음 없이 무지에서 행했다면, 그는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는 자입니다.

마태복음 5장 앞뒤 문맥으로 본 예수님의 의도

예수님은 마 5:21절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 5:19 “계명 중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사람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마 5:20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곧, 사람을 가르치는 자, 곧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영을 깨닫지 못한 자들의 의가 아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차원이 다른 의를 받아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고,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여기서 “형제”는 헬라어 ἀδελφός (아델포스), 즉 같은 자궁—영의 말씀—에서 난 자, 즉 믿음의 공동체 안의 형제를 말합니다.

“노하는 자”는 헬라어 **ὀργίζω (오르기조, G3710)**로, 중간태입니다. 문맥상 “화를 일으키게 한 자”, 즉 말씀으로 영적 생명을 낳게 하기보다, 정죄하여 분노를 유발하는 자를 뜻합니다.

‘라가’(ῥακά)는 히브리어 **רֵיק (레이크, H7386)**이며, 뜻은 “텅 빈, 메마른, 가치 없는 자”. 영적으로는 혼에 묶여 있는 자를 의미합니다.

즉, “라가”라 말하는 것은 “넌 혼에 묶인 자야”라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미련한 놈’은 헬라어 **μωρός (모로스, G3474)**이며, 히브리어로는 **אֱוִיל (에윌, H191)**입니다. 이는 말씀을 배웠지만,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은 자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핵심 메시지: “정죄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라”

이 구절들을 종합하면,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말씀을 가르치되, 형제를 정죄하는 방식으로 하지 말라.

그 정죄는 영의 생명을 깨우기보다 오히려 죽이는 일이 된다.”

형제에게:

“하나님을 더 열심히 만나야 한다”

“세상에 물들지 마라”

“우상을 섬기지 마라”

라고 말하며 정죄하기만 한다면, 그 가르침은 오히려 영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살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 가르침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도피성,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 피할 수 있습니다.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마 5:23-24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먼저 화목하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

여기서 '(먼저) 화목하고'의 헬라어는 디아라소(διαλλάσσω)인데, 이 어원은 '기존에 행한 행위를 변경하므로써 화해하다'의 의미입니다. 즉, 형제에게 가서 자신이 말씀을 잘못전한것을 인정하고 변경하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희생제사라는 형식보다는 형제의 영이 살아나게 하기를 더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즉, 형제를 정죄한 가르침을 회개하고, 그리스도께로 달려가야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끝내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송사하는 자”(ἀντίδικος, 안티디코스)에게 고발당해 심판받을 수도 있습니다(마 5:25-26, 민 35:26-27)


결론

오늘날에도 우리가 말씀을 전할때, 성경의 말씀을 이 세상이라는 거울을 통해 전하며, 성도들을 정죄하기에만 급급하다면 이는 그들의 영을 죽이는 살인인 것입니다. 이는 일부의 성직자들만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알고 말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지중에 말씀을 잘못전한 우리 모두가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의 본질의 말씀을 통해 내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내가 형제의 영을 죽인 자임을 알았다면, 그리스도 안으로 도망하십시오. 그분만이 우리의 도피성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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